<1>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그날이 밝았다.
직장도 팀장직위도 친구도 모두 집어던지고 오직 가족과 함께하기로 한 7박 8일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어찌 마음이 들뜨지 않겠는가?

아침을 김밥으로 떼우고, 어제 밤 늦게까지 싼 짐들을 들고..
9시 10분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기 위해서 우리는 택시를 탔다.

대전역에는 이미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현민)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때리고... 기차에 올랐다.


<삼촌과 솔이>



< 대전역에서 >

크리스마스에도 이브가 화려하고,
일요일보다는 금요일밤이 들뜨듯이..
여행은 그 시작이 정점이 아닌가 한다. ㅎㅎ


<2>

대전에서 부산까지는 딱 2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대구에서 부산까지 새로운 철로가 개설된 모양이다.
대학시절 그 비싼 새마을호를 타고 4시간 걸리던 곳이..
2시간 거리로 바뀐걸 보면.. 인간과 기술의 진화를 옅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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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산역에 도착해서 2번 출구로 나가보니, 크루즈 터미널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를 채우는 사람들은 역시 6,70대의 어르신 들... ㅎㅎ
우리는 역시 영계급에 속했고, 이 것은 크루즈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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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터미널은 부산역에서 생각보다 멀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줄 알았는데... 셔틀이 없었다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예전에 조선과제 하면서 자주 들렀던 부산의 한국해양대학교가 가깝게 보이는 곳에 "국제 크루즈 터미널"이라는 것이 있었다.
터미널에 가까워지자, 우리를 7일간 먹여주고 재워줄 레전드호가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수속절차는 이랬다.
먼저 버스에서 내린 후, 짐에 태그를 붙인 후, 먼저 붙인다.
비행기에서는 티케팅을 하면서 붙이는데, 여기서는 담당 여행사 관계자를 만난 후,
이름을 대고 예약자 확인을 한 후, 바로 붙인다.
짐을 붙여 놓고, 몸을 가볍게 한 후,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가면,
역시 여행사 별로, 가져온 서류를 체크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서류가 체크되면 크루즈 승무원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출국 수속절차를 밟게 된다.
여기서 배에서 사용할 카드도 받고, 신용카드 등의 지불 수단도 등록하게된다.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여행사에서 미리 보내준 내용대로 준비해두면 별 문제없이 진행된다.

우리는 수속을 모두 마친 후, X-ray 검사대를 통과한 후, 걸어서 배에 탑승했다.
그런데, 수속도중에 잠시 후 맞게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건의 씨앗을 뿌리게 되니...
그건 그 때 다시 쓰기로 하고..
일단, 기분 좋게 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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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CI (Royal Caribbean Internatioal)이라고 하는 세계 2등의 크루즈선사이다.
참고로 1등은 카니발이라는 회사이다.
우리가 탑승한 레전드호는 RCI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십척의 크루즈 선 중에서..
중하위(?)등급에 속하는 배이다.
배가 만들어진지도 근 20여년이 되었고, 2002년인가에 한번 Renovation을 했다고하지만 오래된 배인 것은 맞다.
배의 크기는 7만여톤 정도된다.
최근에 RCI에서 인도받은 오아시스호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니
어찌보면 그답~ 크게 보이지 않는 배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1층의 높이(엘리베이터가 운행하는 층 수)에
10층 갑판의 도보트랙이 거의 350~400 미터 가량되는 결코 작지 않은 배였다.
배 안의 시설들 하나하나를 열거하는 것은 로열캐리비언코리아 홈페이지를 활용하길 바라고...
여기서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홍보부장도 아니고... ㅎㅎㅎ

배에 타고 개인적으로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다음 두 가지 이다.
1. 방향 잡기가 힘들다
2. 승무원들이 모두 외국 사람들이다

무려 1800여명이 묶는 객실들이 주로 6,7,8층에 집중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각 층별로 복식구조로 두 개의 라인이 늘어서 있다보니, 처음에는 어디로 가야 내 방이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길 눈이 밝은 편인 나도, 이틀은 헤메인 것 같다.

타기 전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있어 영어를 못해도 별 걱정이 없다던 안내문구 때문에 별 걱정을 안했는데...
당장 입장하자마자 우리를 맞은 것은 거무댕댕한 인도계, 혹은 중남미계 외국인 들이었다.
장인장모님이 좀 불편해 하시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머리를 때렸다.


<5>

어째튼, 배에 타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점심을 먹는 일...
점심을 배에서 준다기에 아침일찍 서둘러 배까지 찾아온게 아니던가..
밥 준다는 9층의 윈재머카페엘 가서 부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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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장모님, 솔이, 소은이가 사용할 오션뷰 선실은 6층 선미로 배의 우측라인이고,
나, 와이프, 처남이 사용할 내측 선실 8층 선수의 좌측라인이었다.
어쩜 그렇게 정 반대로 배정을 해준건지... ㅡ.ㅡ;;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배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직은 잘 몰라서.. 10층과 11층을 주로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했다.

아직 추운 날씨여서 수영을 할 수는 없지만,
9층 옥외에 있는 야외 풀은 여름의 크루즈를 낭만적으로 만들 충분한 재료가 될 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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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 갑판과 11층에서 바라본 선내외 경치도 기록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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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배는 6시 경에 부산을 떠났다.
배가 크루즈 부두를 막 떠나던 바로 그 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씨앗은, 아니 실상은 출국 수속을 하던 시점에 이미 일어났다. 
장기간의 여행을 다닐 때, 내 소지품 부동의 1호는 노트북과 카메라 및 몇몇 액세서리들이다.
이런 물품이 나와 우리가족의 여행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생생한 기록 때문이다.
어느 여행지이건 아침 6시경에 내가 하는 일은 그 전날에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백업하여,
모자란 카메라 메모리를 확보하고, 미진한 사진 실력으로 마구찍어댄 사진들을 필터링하고, 보정하고, Naming을 하는 일이다.
더불어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 전날의 기억들을 글로 옯기는 작업을 하곤 한다.

그 중요한 물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배가 막 부산을 떠나고 있는 그 시점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
그 상황을 파악하고, 마음이 급했다.
최대한 침착하게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면서 재빠르게 행동했다.
아직 영해이기 때문에, 전화기의 3G 안테나는 충분한 상황...

가장 먼저 5층 안내데스크로가서 한국인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승무원 왈,
"출국 수속장에서 업무를 마친 후, 승무원들이 승선하면서 모든 분실된 걸로 추정되는 물품들은 수거해 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물건이 없습니다."
없다는데.. 내가 무어라 할 것인가?

와이프는 우리가 배에 타기 직전에 찍은 사진을 카메라 LCD로 찾아보고서,
이미 그 때 내 어깨에 가방이 없었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내가 출국 수속 도중 (가방이 너무 무거워) 와이프에게 건네주면서 한쪽에 가져다 놓아 달라고 한 사실.
그리고 탑승 전에 찍은 사진에는 나에게 가방이 없다는 것.

가방은 분실되었고, 그것은 분명 크루즈 터미널에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부산 114로 전화를 걸어, 국제크루즈선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그러나, 배가 떠날 때 나와서 "안녕히 가세요~"라며 공연을 하던 팀 사람들이 터미널 멤버들인지..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부산대 탁교수에게 전화를 하는 것...
다소 황당해 하는 탁교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방을 확보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후, 탁교수는 새로운 전화번호를 나에게 문자로 보내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번호는 출입국관리하는 경찰초소의 전화번호 였다.
그 곳에서 전화를 받은 경찰이, 내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 숨을, 한 편으로는 내 연장을 놓고 가는 아쉬움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ㅡ.ㅡ;;
그래도, 찾은게 어디냐는 안도에 무게를 두고, '홀가분 함'이 내가 지금 가져야할 마음이느니라~ 하며 내 머리를 새뇌하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무려 8일간, 컴퓨터를 켜지 않고 지내는 ... 지난 15년여간 전무후무한 일을 해내게(?)된다.
진정한 휴가를 다녀온 셈이지... ㅎㅎㅎ


<7>

공해상으로 들어가는 배위에서 잠시 정신없는 일을 치르고 나서, 어벙벙한 상태였지만, 다시 정신없이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다.
매일 저녁은 레전드호 4,5층의 선미의 쪽에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식당에서 정찬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이 곳은 소위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에,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과 서빙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고,
매일 선내에서 발행되는 선상신문(Cruise Compass)에서 그날의 복장 타입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자리가 없어서 못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승객들은 자신의 고유 테이블을 갖는다.
우리에게 할당된 테이블은 82번 테이블로.. 식당의 한 가운데에 있는 자리였다.
2천여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무리였는지,
정찬 식사는 2회로 나누어서 제공되었고, 우리는 그 중 앞쪽 - 즉 6시경에 식사를 하는 조에 편성되었다.


< 피아노 앞의 동그란 12인용 테이블이 우리에게 할당된 82번 테이블 >


우리는 모두 일곱번의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6번을 로미오와 줄리엣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경험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고, 제법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그래~ 이맛이야~!!'라고 느끼기에는...
우리가 너무 한국적이었던지... 음식이 너무 이국적이었다.... 고 해야 할 듯 싶다. ㅎㅎ
윈재머카페에서 하루 세 끼, 매 끼니마다 김치가 제공되어, 다른 나라 음식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치가 고분분투를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느껴지는 음식과 몸의 이질성을 극복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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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치고나니 시간은 대략 8시...
첫 날...
정신없이 움직이고, 국외로 탈출하고, 가방도 잃어버렸다가 찾고, 크루즈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하고...하느라...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기대만땅으로 시작된 7박 8일간의 크루즈 여행의 첫 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 크루즈 탄 기분인가? >

by juni87 2010. 5. 9. 14:05